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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손바느질이라서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보고도 차이를 몰랐습니다.
 
손바느질 지갑이든 기계로 꿰맨 지갑이든 솔직히 어느 쪽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손바느질을 동경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사진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손바느질일까요?’라고 물으면 망설일지도 모릅니다.
 
옷이나 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지 설명할 수 없는데도 왠지 마음이 가는 것이 있습니다.
반대로 소재와 기능에 관한 설명은 납득이 되는데도 왠지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물건을 고를 때는 그런 일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손바느질을 생각할 때도 조금 비슷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지금 손바느질로 지갑을 만드는 것은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늘땀 자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손바느질로 만들기로 정하자
자연스럽게 다른 공정에도 각오가 생겼습니다.
 
재단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신경이 쓰입니다.
겹친 가죽이 맞지 않으면 신경이 쓰입니다.
가장자리의 윤곽이 정돈되지 않으면 아무리 정성껏 꿰매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바늘땀만 예뻐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손바느질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지갑 전체에 요구하는 기준이 명확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손바느질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계속 만들다 보니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아, 내가 좋아한 것은 손바느질 자체가 아니구나.
이렇게 전체가 정돈되는 방식이었구나.
 
손바느질을 선택했다기보다
다듬어 간 결과 손바느질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지갑을 만들 때 처음 보는 것은 바늘땀이 아닙니다.
 
닫았을 때의 윤곽.

가죽이 겹치는 모습.

손에 쥐었을 때의 밀도.

그런 부분을 하나씩 다듬다 보면 결과적으로 손바느질이라는 선택이 남습니다.

ohno lavoro in cuoio는
아름답다고 느낀 감각을 지갑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