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야생동물 가죽에 관하여 · 3편(사슴)

사슴 가죽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일본인과 사슴 가죽에 대해 조금 써 보려 합니다.
지난번에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갑옷과 무구, 다비에 즐겨 쓰인 전통 천연 가죽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소나 말보다 사슴이 많았을까요?
사슴 가죽의 독특한 특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첫째, 사슴 가죽은 젖은 뒤 말라도 쉽게 굳지 않습니다.
소가죽과 말가죽은 비나 땀 등 수분을 머금었다 마르면 콜라겐 섬유가 굳어 딱딱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전장에서 비와 땀, 진흙의 수분을 흡수해 움직임이 제한되면 생명에 직결됩니다.
사슴 가죽은 젖었다 말라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므로 이것이 소나 말가죽과 가장 큰 차이일 수 있습니다.
무구 소재와 발의 쓸림을 막는 다비에서 ‘젖어도 딱딱해지지 않는’ 특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는 매끄러움입니다.
갑옷 가슴에는 쓰루바시리라 불리는 넓은 사슴 가죽을 붙입니다. 활을 쏠 때 활시위가 갑옷에 닿아도 매끄럽게 미끄러져 금속 부품 등에 걸리지 않도록 한 장치입니다. 사슴 가죽의 매끄러움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것입니다.
갑옷 가슴에는 쓰루바시리라 불리는 넓은 사슴 가죽을 붙입니다. 활을 쏠 때 활시위가 갑옷에 닿아도 매끄럽게 미끄러져 금속 부품 등에 걸리지 않도록 한 장치입니다. 사슴 가죽의 매끄러움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것입니다.
폭신하고 부드럽고 매끄러운 촉감은 사슴 가죽만의 특징이라 갑옷 안감과 손 보호구 등에도 쓰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본 궁도에서 오른손에 착용하는 유가케 장갑과 여성 궁사가 활시위 마찰로부터 가슴을 보호하는 가슴 보호대 등 피부에 직접 닿는 부분에 쓰입니다. 사람 피부와 가장 비슷하다고 하는 사슴 가죽은 맨살 같은 밀착감으로 발과 손의 쓸림을 막는다고 합니다.
셋째는 뛰어난 통기성입니다.
사슴 가죽은 가볍고 부드러우면서 통기성이 좋아 습기를 내보내고 적당한 수분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다비에 적합하며 쉽게 답답해지거나 습기로 손상되지 않는 소재입니다. 에도시대 초기까지는 사슴 가죽 다비가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다비 소재가 사슴 가죽에서 무명으로 바뀐 큰 전환점은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였습니다.
이 화재 이후 방화복의 일종인 가죽 하오리에 사슴 가죽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크게 올랐고, 서민과 일반 무사의 다비는 무명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오늘날 일본 전통 복장에는 무명 다비가 익숙하지만 예전에는 사슴 가죽이었다니 흥미롭습니다.
사슴 가죽이 많이 쓰인 넷째 이유로는 환경적 배경도 큽니다.
당시 일본에서 큰 소와 말은 농사와 운송의 중요한 동력이었으니, 오늘날의 트럭과 트랙터, 불도저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재산이었으므로 도축해 소비하는 데 상당한 장벽이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야생 사슴은 훨씬 많고 가까운 사냥 대상이었기에 역사적으로 소나 말보다 훨씬 풍부하게 활용된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일본에서는 가죽과 식량뿐 아니라 뿔도 널리 활용했습니다.
매우 단단해 무기와 무구 외에도 기모노의 네쓰케와 비녀, 칼자루 끝 장식, 도장과 낚싯바늘 같은 실용품에 썼고, 달이거나 가루로 내어 한약과 생약에도 사용했습니다.
버릴 곳 없이 예부터 여러 분야에 활용된 것을 보면 오늘날보다 사슴이 훨씬 가까운 존재였음을 알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